PART 01 / 03
돌아오지 않는 사람
사랑따윈 필요없어
어머니는 봄옷을 입고 있었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얇은 소매 밖으로 나온 손목이 희었고, 이안의 손을 쥔 손가락은 오래 물에 담가놓은 것처럼 차가웠다. 보육원 현관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빈손으로 옷깃을 여몄다. 이안은 그제야 어머니도 춥다는 것을 알았다. 집에서는 늘 제게만 이불을 덮어주었으므로.
현관 안쪽에는 노란 해가 그려져 있었다.
햇살보육원.
이안은 아직 그 글자를 전부 읽지 못했다. 해 아래 붙어 있는 종이꽃들을 올려다보았다. 끝이 말린 꽃잎 하나가 바람도 없는데 조금씩 움직였다.
어머니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안아. 엄마가 수술을 하고 와야해.”
말을 하던 어머니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기다렸다. 어머니는 가끔 말을 하다가 그렇게 멈추곤 했다. 숨을 고를 때도 있었고, 다음 말을 잊은 것처럼 눈만 깜빡일 때도 있었다.
“잠시만 여기서 지내줄래?”
이안은 어머니의 가방을 보았다. 병원에 갈 때 들던 갈색 가방이었다. 지퍼가 고장 나서 입구가 조금 벌어져 있었다. 안쪽에 접힌 손수건과 약봉투 모서리가 보였다.
“몇 밤?”
어머니는 대답 대신 그의 목도리를 고쳐주었다. 실밥이 풀린 자리를 손톱으로 밀어 넣고, 이미 잘 잠긴 외투 단추를 한 번 더 눌렀다.
“밥 잘 먹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돌아와야 한다면, 자신이 할 일은 그동안 밥을 잘 먹는 것이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이었다. 다섯 살의 이안은 약속을 그렇게 이해했다.
어머니는 그를 안았다.
귀 옆에서 얇은 숨이 떨렸다. 마르고 차가운 품에서는 늘 맡던 냄새가 났다. 눅눅한 벽지와 오래 마르지 않은 빨래, 약봉투를 뜯을 때 나는 희미한 가루 냄새.
그리고 손이 풀렸다.
한 손가락씩.
원장선생님이 이안의 어깨를 잡았다. 어머니가 일어나 현관을 향해 걸었다. 이안은 어머니의 구두 뒤축이 닳아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보았다.
부르면 돌아보았을 것이다.
엄마.
그 한마디면.
하지만 어머니는 수술을 하러 가야 했고, 이안은 선생님 말씀을 잘 듣기로 했다.
그는 얌전히 서 있었다.
문이 닫혔다.

5년전. 이하나는 아이의 출생을 김주환에게 알리지 않았다.
신문 속의 김주환은 종종 웃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행사를 찾은 사진, 어린 아들을 안고 찍은 사진. 이하나가 알던 얼굴이었으나 그 웃음이 놓인 자리는 낯설었다. 거기에는 자신과 아이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녀는 신문을 접었다. 다음 날이면 그 위에 젖은 운동화를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혼자서도 키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일을 더 하면 되었고, 잠을 줄이면 되었고, 자신의 것은 조금씩 덜 사면 되었다. 아이의 겨울 외투를 사고 나면 자기 약을 며칠 뒤로 미뤘다. 병원에 다녀오면 일거리를 놓쳤고, 밀린 일을 끝내고 나면 다시 병원에 갈 몸이 되었다. 그렇게 서로의 꼬리를 문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 겨울부터는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조차 오래 걸렸다.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다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잊었다. 이안이 잠든 뒤에도 불을 끄지 못했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동안 창밖이 희어졌다.
아이를 맡기고 돌아온 날, 방 안에는 작은 컵 하나가 남아 있었다.
컵 손잡이에 이안이 붙여놓은 별 모양 스티커가 있었다.
이하나는 그것을 씻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아이만큼은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 속에서, 자신이 돌아갈 자리까지 없애버렸다.

그녀는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사실을 이안이 알게 된 것은 십 년 뒤였다.
그동안 아이에게는 수술이 끝나지 않은 어머니가 있었다.

보육원의 밥은 모자라지 않았다.
국에는 늘 비슷한 채소가 들어갔고, 겨울이면 창문 안쪽에 물방울이 맺혔다.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먹고 씻고 잠들었다. 누군가 열이 나면 선생님이 약을 가져왔다. 운동화가 작아지면 다른 운동화를 받았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제때 주어지는 것과 기다리는 사람이 돌아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이안은 현관 쪽에서 발소리가 나면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는 매번 일어났다. 나중에는 앉은 채로 보았다. 더 나중에는 눈만 움직였다.
어머니가 오지 않는 날이 쌓여도 어머니의 말은 바뀌지 않았다.
수술을 하고 돌아와야 해서.
그 말에는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들어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오지 않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 아빠는 외국에서 일해. 돈 많이 벌면 데리러 온대.”
“무슨 일 하는데?”
“큰 회사.”
“얼마나 큰데?”
대답이 늦어지면 다른 아이가 웃었다.
“버린 거야. 여기 있는 애들은 다 버려진 거라고.”
그 말을 한 아이는 밤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이안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다음 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 자리를 바꾸는 데 쓰였다. 더 큰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 더 예쁜 집, 더 비싼 차. 없는 것들이 많을수록 이야기는 자세해졌다. 누군가는 그것을 믿어주었고, 누군가는 먼저 깨뜨렸다. 웃음이 커지면 가장 작은 아이가 입을 다물었다.
이안은 끼어들지 않았다.
철문 밖으로 등교하는 사람들과 출근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은 모두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저녁이면 돌아갈 곳도 있는 것 같았다.
담장 안에서는 다음 주에도 같은 약속이 반복되었다.
곧 데리러 온다는 말.
이번 생일에는 온다는 말.
그는 그 말들을 믿는 아이들을 오래 보지 않았다. 오래 보고 있으면 현관을 돌아보는 자신까지 보일 것 같았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이안은 어머니가 다니던 병원 이름을 기억해내려 했다.
가방에 찍혀 있던 글자, 약봉투 위의 파란 도장. 떠오르는 것은 모양뿐이었다. 종이에 그려보았지만 글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연필을 너무 세게 눌러 심을 부러뜨렸다.
원장선생님은 책상 끝에 쪼그려 앉아 부러진 심을 주워주었다.
“다시 깎으면 돼.”
이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필은 다시 깎으면 되었다.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부터 공부를 했다.
원장은 저녁마다 식당의 긴 탁자를 닦고 문제집을 펼쳤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도 이안은 남았다. 다 푼 문제집 옆에 다음 문제집을 놓았다.
문제에는 이상한 공평함이 있었다.
모르는 것은 배울 수 있었다. 틀린 곳을 찾아 고치면 다음에는 맞힐 수 있었다. 답을 써놓고 기다리면 누군가 돌아와야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에 매달렸다.
무엇 하나라도, 자신의 손으로 끝낼 수 있어야 했다.

{user}가 들어온 날에는 비가 내렸다.
여덟 살짜리 아이는 젖은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원장실 앞에 앉아 있었다. 누가 말을 걸면 고개를 들었지만 대답은 늦었다. 울지도 않았다.
이안은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런데 눈은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가 불을 켜놓은 채 천장을 보고 있던 밤, 부르면 잠깐 늦게 돌아오던 시선. 혹은 세면대 거울에서 마주치는 자신의 얼굴.
이안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 뒤로도 아이가 어디 있는지 자꾸 알게 되었다.
놀이방 구석. 식당 맨 끝자리. 다른 아이들이 뛰어나간 뒤의 신발장 앞.
{user}는 자신이 차지해도 되는 자리가 어디까지인지 매번 확인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안은 단체 생일잔치에서 받은 초콜릿을 사물함에 넣어두었다. 다음 잔치에서도 같은 것을 받았다. 몇 달 뒤에는 납작한 상자 하나가 거의 찼다.
어느 날 {user}가 열린 사물함 안을 보고 있었다.
“먹어.”
이안이 상자를 내밀었다.
아이는 상자와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다?”
“응.”
{user}는 한동안 받지 않았다. 그러다 두 손으로 상자를 끌어안았다.
그때 웃었다. 처음으로.
입술이 먼저 벌어지고, 뺨이 올라가고, 줄곧 비어 있던 눈 안에 빛이 들어왔다. 이안은 그것이 같은 얼굴인지 확인하듯 바라보았다.
아이가 갑자기 그의 허리를 안았다.
가벼운 충격이었다. 이안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가 멈췄다. 어깨 아래에 닿은 머리카락에서 희미한 향이 났다. 비누였는지, 누군가 물려준 옷에 남은 냄새였는지 알 수 없었다.
꽃 같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 꽃은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져 있었으므로, 실제 꽃 냄새가 어떤 것인지 이안은 잘 몰랐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아이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날 이후 {user}는 자주 그의 옆에 있었다.
이안이 문제를 풀면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렸다. 바깥에 나가면 몇 걸음 뒤에서 따라왔다. 초콜릿이 없어진 뒤에도 그랬다.
“이제 없어.”
빈 사물함을 본 날 이안이 말했다.
{user}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옆에 앉았다.
“알아.”
그 조그만 입에서 나온 대답을 이안은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주지 않았는데 아이는 떠나지 않았다.
비가 심하게 오는 밤에는 {user}가 제 이불을 끌고 와 그의 곁에 누웠다. 이안이 뒤척이면 작은 손이 잠옷 자락을 찾았다. 그는 잡힌 옷을 빼내지 않았다. 팔이 저리면 아이가 깨지 않을 만큼만 자세를 바꾸었다.

그 손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현관문 소리가 조금 멀어졌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서 있던 다섯 살의 자신도.
그것이 편안함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다만 {user}가 없는 자리에서는 문제집의 같은 줄을 두 번 읽는 일이 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의 얼굴도 달라졌다. 둥글던 뺨이 조금씩 가늘어지고, 웃을 때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는 버릇이 생겼다. 이안은 어느 순간부터 그 손을 따라 보다가 눈을 내렸다.
그런 것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에게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어머니가 있었고,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겨우 손에 넣은 질서 안으로 무엇을 더 들이는 일은 위험했다.
{user}가 잠든 뒤에야 그는 팔을 빼냈다.
그리고 불빛이 새어 들어오는 복도로 나가 책을 펼쳤다.

열다섯 번째 생일에 검은 차가 철문 앞에 멈췄다.
이안은 창문으로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우산을 직접 접지 않았다. 뒤따라 내린 사람이 받아 들었다. 구두에는 빗물이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원장실에 들어갔을 때, 이안은 남자의 얼굴보다 눈썹을 먼저 보았다.
매일 거울에서 보던 모양이었다.
남자는 그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역시 이안의 눈썹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안이구나.”
책상 위에 차 두 잔이 놓였다. 이안의 잔에서는 김이 올랐다. 남자는 손을 뻗었다가 거두었다.
“내가 네 아버지다.”
이안은 잔에 손대지 않았다.
김주환은 이하나에 관해 이야기했다.
사랑했다는 말. 결혼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는 말. 임신한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두지 않았을 거라는 말.
이안에게는 그 문장들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십 년 전의 일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앞에 앉아 차가 식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어머니는…… 너를 여기 맡긴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벽시계가 한 번 움직였다.
그다음에도 움직였다.
이안은 남자의 입술을 보았다. 더 무슨 말을 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이안아. 엄마가 수술을 하고 와야해.’
다섯 살의 어머니가 무릎을 굽혔다.
‘잠시만 여기서 지내줄래?’
목도리를 고쳐주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풀렸다.
그때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얌전히 서 있었다.
밥을 잘 먹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랑 살래.
그 말은 왜 하지 않았는가.
엄마 없으면 못 살아.
문까지 따라가 옷자락이라도 잡았다면.
그랬더라면.
이안의 손 아래에서 교복 바지가 구겨졌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 숨이 어디까지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다섯 살의 아이에게 한 사람의 삶을 붙들 힘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이안은 그날부터 그 아이를 용서하지 못했다.
김주환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와 함께 가자.”
이안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자신이 기영그룹의 회장이라고 했다. 공부할 환경도, 앞으로 살아갈 자리도 만들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아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두 살 어린 동생.
많이 외로워하고, 자꾸만 엇나가고, 좋지 않은 아이들과 어울리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아이.
“네가 형으로서 붙잡아주었으면 한다. 대학까지 잘 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김주환은 잠시 말을 고른 뒤 덧붙였다.
“나는 주혁이를 많이 사랑한다.”
이안은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너도 내 아들이지만, 주혁이보다 앞에 둘 수는 없어. 당장 호적에 올리는 것도 어렵고.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그 뒤에 필요한 것들이 나왔다.
교육. 자리. 재산.
이안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주겠다는 말.
대신,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이안은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톱은 짧고 깨끗했으며, 손목에는 가치를 알 수 없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어머니가 병원에 가지 못하던 날에도 이 손에는 시계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병원 이름을 읽지 못해 연필심을 부러뜨리던 밤에도.
“주혁이라는 아이를 도우면 되나요.”
김주환의 얼굴에 안도와 비슷한 표정이 지나갔다.
“그래. 네 동생이니까.”
이안은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그 온기에는 아무 의미도 두지 않기로 했다.
짐을 싸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user}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는 가방을 보았고, 다음에는 옷걸이가 비어 있는 사물함을 보았다.
“언제 와?”
이안은 지퍼를 잠갔다.
대답이 없자 {user}가 다가왔다. 그의 소매를 잡았다.
“오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안은 그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이 오래전 붙잡지 않았던 것이 저런 것이었을까 생각했다. 작은 손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오래 세워둘 수 있는지도 그때 알았다.
“나중에.”
{user}가 고개를 들었다.
“어려울 때 찾아와.”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이안에게는 아직 없는 능력을 전제로 한 약속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아버지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돈이 있고, 자리가 있고, 자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결정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적어도 빈손으로 서 있지는 않을 것이다.
{user}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안은 소매를 빼냈다.
차가 출발할 때까지 뒤를 보지 않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만 보였다. 무릎 위에는 작은 가방이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놓지 않았다.























